Rap은 매일 조금씩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친구 없는 친구들이 Rapper한다고 뎀빈다
부모가 운다.
친구가 연락을 끊는다.
멋있다고 칭찬해 주던 여자친구 역시 얼마 안 가 실업자라고 업신여길 거다.
너 임마 그렇게 살면 집만 있지 노숙자야.
“할아버지, 할머니 오래 사시구요”
들려 주신 덕담은
“군대나 가 개새끼야”
MC Meta는 96년에 서울에 왔다.
그 때는 그도 나도 평범한 학생이었다.
무언가에 취하거나 정신을 잃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무언가에서 깨어나야 할 것 같아.
얌전한 B-boy였던 Keeproots와 Ra.D는 작곡을 배운 뒤로 지금처럼 망가졌다.
그게 10년 째다.
모든 건 변했는데 기분은 똑같아.
마치 오늘의 비가 그런 것처럼
Chorus)
이 밤
비가 존내 와
잠이 존내 안 와
안 와
이 밤
비가 존내 와
잠이 존내 안 와
군대 온 지 열흘 됐어.
Marilyn Manson이 포르노배운 줄 아는 중딩들은 대한민국의 첫 번째 랩 곡이 홍서범의 ‘김삿갓’이라는 건 아는지 모르겠다
‘난 알아요’가 아니면 랩이 아닌 줄 알았지.
국민학교 때, 노래 시킬 때도, 이승철의 발라드가 판을 치던 와중에도, 나 혼자서 바지를 뒤집어 입고 Kriss Kross를 불렀다.
“미친놈, 선생님, 쟤 혀가 이상해요”
K.O.D.를 처음 보았던 99년.
클럽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했는데 엉뚱하게 구경하던 찌질이들이 댄스가수로 떠서 내무실에 울려 퍼진다. 아놔.
밀림을 헤집고 다니며 라임을 찾아 헤매던 그 시절의 중딩들이 지가 망할 차례라며 판을 들고 나온다.
걱정하지 마라.
나도 곧 돌아간다.
그런데 오늘 밤에는 잠이 좀 안 오네.
Chorus
Kebee를 처음 봤을 때 그는 고3이었지.
가요제 나온다는 사람이 옷을 그렇게 못 입어.
누덕도사 같았지만 눈빛은 엄청 났고 모여 있던 많은 사람이 그의 라임에 집중했었다.
신의 의지의 Show에는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Rap을 들으러 모였고, 희망은 없어 보였다.
친구도 없어 보였고, 돈도 없어 보였고, 그들의 열정을 지지해 주는 팬들 역시 없어 보였다.
달라진 게 많은데도 나아진 게 없었다.
뜨고 싶으면 여전히 그런델 나가야 했다.
여중생들이 싫어하지 않는 얼굴을 만들려면 니 경우에는 800, 내 경우에는 2800.
밀림을 헤집고 다니며 라임을 찾아 헤매던 그 시절의 중딩들이 지가 망할 차례라며 판을 들고 나온다.
걱정하지마라.
나도 곧 돌아간다. 너희들과 죽을 때까지 쫄쫄 굶어주마.
나는 막돼먹은 라임과 무개념으로 가득한 지성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소화가 안 되는, 내 조국의 대중문화를 욕 되게 만들고도 차고 넘쳐 올라와서 너네집 안방에 토하게 만드는 강력한 데미지를 입 안에 넣고 참는 중이다.
나중에 보자.
그럼 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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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참 묘하네요ㅎㅎㅎㅎ 어떻게 그렇게 찾아 오셨는지.ㅋ
라며 오신다고 햇으니 기다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