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2007년, 서울농대는 - 선구자

 

2007년, 서울농대는

지역시스템공학과(전 농업토목전공)

03 황종섭


1. 관악에서의 5년


 관악으로 캠퍼스를 이전한지 벌써 5년이나 되었습니다. 제가 03학번인데 2003년 2학기에 올라왔으니, 저는 수원캠퍼스에 수업을 들으러 간 적이 없는 셈이지요. 이렇게 관악으로 이전하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농대에 입학하는 학우들은 이제 어엿한 관악의 한 학우로 입학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농대가 가지고 있었던 집단적인 문화나 농대로 모이는 문화도 많이 희석된 느낌입니다. 이전에는 쉽지 않았던 관악의 동아리 활동도 많이 하고 생활공간을 같이 하지 않는 점 등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농대학생회의 노력으로 학우들을 농대라는 틀로 묶어낼 수 있는 대중사업을 꾸준히 진행하여 최근에는 어느 정도 농대라는 틀로 묶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대중사업의 성과가 운동의 성과로 되지 않는 것이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사업의 양이나 참여하는 학우들의 수는 증가하지만 실제로 대중사업이 옛날과 같은 의의를 가지고 진행되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일정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진행되던 사업이 이제는 학우들이 모이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학생회의 정치적인 실력이 줄어든 것과 실제로 학우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객관적인 사실이 합쳐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 학생회는


공간 재배치

 최근 몇 년간 농대학생회에서 진행된 사업을 중심으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지금의 농대건물에 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건물 자체가 버리는 공간이 엄청 많은 구조입니다. 더군다나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의 생활공간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건물을 설계했다는 것이지요. 관악으로 이전하면서 계속해서 공간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처음에 각 과방이 있을 곳이 없었으니 딱히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공간의 확보 및 재배치 문제를 가지고 본부와의 협상과, 학우들과의 토론을 계속 진행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2006년 농대 학생회실의 이전을 포함한 구체적인 내용으로 본부와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종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공간 재배치를 축하하는 고사도 지내고 많은 요구로 만들어진 라운지도 얻어내게 되었습니다. 근 4년간의 공간 재배치가 끝난 것이지요. 하지만 안정된 상태가 되었다고 해도 늘어나는 동아리나 학회 등이 들어갈 수 있도록 공간을 계속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런데 요 며칠 전부터 본부에서 라운지에 매점을 만든다는 소식을 전해 와서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대중단위 활성화

 앞에서도 말했지만 근 몇 년간 목숨을 거두려는 대중단위들의 숨통을 트게 하기 위한 대중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는 ‘새내기 새로 배움터(새터)’와 ‘대동제(농락農樂)’ 등의 과학생회 단위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많이 붕괴된 과학생회와 동아리 등이 자체 생활력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추동하는 일이 주된 과제였습니다. 2005년부터의 적극적인 대중사업으로 지금은 어느 정도 궤도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대중적인 움직임을 대의체계로 묶어 새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몇 명 없는 집행부지만 각 과를 돌아다니면서 학우들의 의견을 직접 들으려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진보적인 학생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각 과에서 열심히 학회도 하고 있지요. 이러한 학회/소모임 등의 중흥을 위해 ‘학회/소모임 발전소’라는 이름으로 지원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농업, 농대 정체성 살리기

 그리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려고 했던 것은 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학우들과의 공감입니다. 학교의 이름과 과의 이름이 수시로 바뀌는 현실이 농대생으로 하여금 농업을 스스로 부정하게끔 만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생명과학’에 중심을 두는 모습이라든가 각 과의 이름에서 ‘농’이라는 정체성을 거세하는 일 등이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물론 이러한 것은 사회적으로 농업의 위치가 굉장히 약해져있기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학우들 중에 대부분이 또한 이러한 사회적인 시각을 알고 있으므로 ‘농업’ 보다 다른 것들을 기대하고 농대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서 농업과 농대를 다니는 학우들과의 상관관계가 매우 약해졌습니다. 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꾸준하게 ‘농업’에 대한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었습니다. 매년 진행되는 농촌활동을 대중적이고 큰 상으로 준비하는 것이나, 전국 농대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애농학교’ 등의 연대활동을 추진하는 것, 그리고 2005년 농민열사투쟁과 2006년 한미FTA저지투쟁까지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2007년 여름농활을 앞두고 농촌의 현실과 농업의 절대가치를 학우들과 함께 나누기위한 교양준비를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반제항전

 마지막으로 <반제항전 일세기의 자랑찬 전통>이라는 농대학생회의 칭호(?)에 어울리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전만큼 대중적으로 참여하는 일은 많이 없지만 농대학생회와 문예패 들풀을 중심으로 모인 학우들과 주로 활동을 합니다. 꾸준히 학내에서 615공동선언을 알려내고, 우리민족끼리 통일해야한다는 내용의 선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제국주의의 영구적인 한반도 지배전략을 막으려는 활동도 하고 있지요. 예를 들면 많은 학우들이 연행 당했던 작년 5월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투쟁과 아직까지도 진행되는 한미FTA반대투쟁 등이 그러합니다. 한미FTA도 단순히 경제적인 손해라는 측면보다는 굴욕적이고 비균형적인 한미관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아주 첨예한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3. 마치면서


 저의 짧은 학생회 생활을 바탕으로 써보았습니다. 선배님들이 이 글을 보고 학교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워낙에 글 쓰는 솜씨가 없어서 잘 전달이 될지 모르겠네요. 다 쓰고 나니 너무 딱딱하고, 사업을 중심으로 썼다고 생각되는 데요, 실제 평소 생활과 같은 측면은 어떤 말을 써야할지 난감하네요. 사실 별로 다를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요.


 최근에 각 학교의 학생회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농대도 예외는 아니겠습니다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는 한 언젠가는 예전의 모습, 나아가 더 발전된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학교에서 더 고민하고 실천하는 후배가 되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저런 모임에서 많이 뵙도록 하겠습니다. :)

by 종섭 | 2007/06/20 16:02 | Works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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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미도리 at 2009/10/3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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